2004/06/14 13:36
그 이전의 댄스음악은 저 김세레나 선생의 율동의 기저에서 몇발자국 나왔을 뿐이었다. 이은하, 나미가 그랬다. 인순이는 진정한 음악을 할 줄 아는 율동가이자 최고의 가수였지만 그녀가 인정을 받는 순간은 20년이 더 지나서 조PD를 만난 후에나 가능했다. 그리고 김완선이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댄스가수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방점을 찍는 것은 몇몇의 이유로 불가하다. 첫번째는 춤의 아이덴티티가 불분명했고 두번째는 춤과 노래가 동일한 가치로 취급받지 못하고 춤과 노래 모두 섹스어필한 그녀의 이미지 창출의 소도구로만 전락했기 대문이다.(그녀가 보여준 이후의 괄목할만한 성과는 차후에 이야기 하도록 하자)
댄스음악의 시작은 그래서 '소방차'에서부터 시작한다. 80년대 불붙은 보이밴드의 아우라를 업고 지금 보면 어이없을듯한 꽃미남 3인방으로 결성된 그들의 말바지(승마바지)에 얼마나 많은 소녀팬이 자지러졌던가?
이상원이 퇴출되고(항간의 소문에 보다 여성팬이 많았던 이유로 따를 당했다고 하는데...어디까지나 소문을 들은것 뿐이다) 무말랭이스러운 도건우가 들어와서 보여준 '정원관 받침목으로 사용해 뒤로 덤블링'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게 어디 가수인가? 아크로바틱 쇼를 가수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승화해 낸 기획력이 도대체 어느 머리에서 나왔단 말인가?
댄스그룹은 소방차를 발판으로 야차, Ref등을 거쳐 HOT에 이르러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핵심으로 등장하지 않더냔 말이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가수는 굳이 노래를 하지 않아도 노래할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근거이유를 제시한 점 또한 소방차의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덤블링 하는데 노래부를 여유가 어딨더냔 말이다.
어쨌든 1980년대의 자잘한 족보를 들어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 음악에 대한 편협함 때문이다. 사실, 그 시절의 댄스그룹을 난 무척 경멸하고 있었다. 붕어들, 바보들, 돌대가리 년들로 폄하하는 내 몇개 안되는 얄팍한 앎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세상의 어떤 문화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문화의 계급성이 곧 사회의 계급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반은 알았고 반은 몰랐다.
소방차의 고별 공연실황을 보면서 눈물을 짜는 여동생의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누구의 머리에 총구를 겨눠서 죽여버린 프레디 머큐리의 엄마에게 한 고해성사나 지 아들에게 애비의 절절한 마음을 전한 존 레논이나 온 방에 병아리를 밟고 던져야 하는 오즈오스본의 분열이 고급문화로 비추어졌다.
트로마 사단 B급 영화의 어이없는 특수효과에 컬트란 미명으로 끊임없는 찬사를 내보내고, 70년대 한국영화의 신파멜로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갖다 붙이고 유약한 80년대의 한국만화에 각종 수식을 붙여대며 이러한 하부구조의 갈등을 겪은 한국영화가 이제서야 그들 덕분에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온갖 변명들을 찾아낼동안 난 소방차를 경시하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어줍잖게 잊고싶은 저 아래의 무엇으로만 천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의 이러한 반성은 진행중이다. 나도 모르게 무시했던 그 주옥같은 무엇인가가 또 날 반성하게 할거다. 문제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계속되는 자기검열이 언제까지 가능할거냐다. 마음먹은데로 살면 다 잘살지. 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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