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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7 구라 오딧세이
  2. 2009/04/16 달란트 (1)
한양대.

뽀얗고 작고 귀여운 여자가 앞자리에 앉았다.

영택이한테 말했다.
"야, 쟤 이쁘다."
영택이는 말했다.
"병시나, 니가 쟬 꼬시면 내가 술값 낸다."

이미 소주 두 병반을 마셨기 때문에 쪽팔림 같은 건 없었다.
아줌마한테 도꾸리 한 병을 시켰다.

도꾸리를 들고 마주보고 있는 테이블로 갔다.
"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요."
앉았다.
"액면 딱, 보니까 내가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데 말 놓을게요."
"네?"
"오케이, 승락했고."
"네?"
"이름은?"
"네?"

그녀의 눈빛이 "넌 뭐하는 새끼냐?"라고 묻는듯하다. 이럴 때 타이밍을 놓치면 난 한갓 불량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짐승같은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구면이라서... 몇학년이었지?"
"저, 졸업했..."
"아, 그렇구나. 졸업했구나. 그럼, 지금은...?"
"행정...."
"아, 그래, 어디?"
"저, 공과대.."
"형, 기억나?"
"아뇨"
필사적으로 나를 기억해내려는 그녀였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나를 어떻게 기억해 낸단 말인가?

“그러니까 저, 누구더라, 왜 RT 선배 있잖아... 그, 김, 뭐드라?“
“영호 선배요?”
“어, 그때 걔랑 너 같이 보지 않았었나?”
“아, 아니요...”
“아, 그럼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으하하하하”
“네?”
“그건, 그렇고... 무슨과 졸업?”
“처...철학과요.”
“아, 내가 또 데카르트랑 친해, 그쉐끼, 합리주의, 맞죠? 미학이랑도 친하고. 18세기 미학사는 내가 다... 오죽 좋아하면 친구중에 김미학이도 있고....”
“저....”
“죄송한데, 저 친구랑 이야기 중인데요.”
“아, 친구분. 죄송. 그럼 이렇게 하죠.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니까 여기에 있는 술은 내가 살게요. 친구, 친구분 외동딸이죠?”
“네, 헉, 네. 어떻게...”
“친구분 키홀더에 차키가 붙어있는데 이건 친구분 차가 아니야. 보통 여자가 자기차를 가지면 이런 키홀더에 안꽂아. 이건 중년 취향이거든. 보니까 엄마차야.”
“엄마야...”
“뭘, 놀래. 그리고 가족 많은 집은 자식한테 차 안내줘. 그건 몰래 탔을 때나 가능한 건데 친구분 성격에 훔쳐탈 스타일은 아니야. 곱게 자란 외동딸이니까 엄마가 차 내준거지. 차종은 소나타, 그랜저인데 엄마차니까 소나타?”
“네”
“지금 앞에 있는 친구가 우울해서 술한잔 하자고 했지? 그래서 기어나왔지? 나오기 싫은데...”
“네, 어떻게...”
“앞에 앉은 분은 학교에서 지금 나온 복장이야. 불편해보이잖아. 정장바지 투피스에 V넥 원피스에, 울었는지 코쪽에 파운데이션이 살짝 지워져있어.”
“친구분은 대충입고 화장만 했지. 귀걸이, 목걸이 다 없이 세수하고 머리 안감고 바로 나왔잖아. 쪽팔리니까 엄마 차 빌려서...”
 
술기운에 신기가 돈다.

친구가 외동딸이란 건 대충 때려 맞춘거고, 그녀가 남동생이 있다는 것도 얼떨결에 때려 맞춘다. 그녀가 처음 자리 잡고서 남동생과 통화한걸 엿들었다는 건 이야기 안한다.

영택이를 불러 합석을 했다.

철학과 여자를 꼬실 때는 칸딘스키만한게 없다. 여자는 도형과 분할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모네가 왜 위대한지 여자는 서술로만 기억한다. 보이는 것과 실제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남자 쪽이 우세하다. 남자는 게임을 통해 공간과 지각, 실제와 경험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족보를 외듯이 줄줄이 외워주면 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뭐가 뭐를 낳듯이... 우리는 모네가 야수를 낳고 실제하는 것이 지각을 낳고 마그리트를 낳고 낳아보니 천재고, 피카소를 거쳐 칸딘스키를 낳고 이게 또 제프쿤스를 낳았는데 이 부러운 새끼는 치치올리나와 결혼을 했다. 예술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 세계적인 포르노 배우이자 이탈리아 국회의원과 결혼을 하다니...

이 어린양 둘은 기절한다. 지금 둘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망각한 채 우리와 앉아있다. 주여, 어린양을 찾지 마소서...

구라는 근거를 뒷받침 할 때 현실이 된다.
디테일의 힘이다.





나는 그날 결국 술을 얻어마셨고 즐거웠다.

작고 뽀얗고 이쁜 그녀는 2002년 5월 결혼을 했다.
난 무척 축하해주었다.
행복하길 바랬고 지금도 바란다.
그녀는 곧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붕붕이 엄마가 되었다.

만난지 9년, 결혼한지 8년.
그녀의 남편은 아직도 그녀를 만났던 29살처럼 살고 있으나 그녀는 학부형으로서 마미캅 총무(뭔, 이름이 저따윈가?)도 하고 ‘동화책 읽는 어른들의 모임’(아, 관공서스러운 작명이여)에도 나가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어제, 그녀가 미학오디세이를 다시 읽는다.

난, 점잖게 그 책을 빼앗아 침대 밑으로 던졌다.
“왜그래?”
“나, 내일 민방위 소집이라 7시까지 나가야 해. 여보 불끄자.”









미처, 9년전 내 구라가 뽀록날 것이 두렵다는 말을 못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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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top
2009/04/16 09:30
에르메네질도 제냐 양복에 에르메스 구두를 신고 나타난 경호를 본 건 어느 더운 여름날 토요일이었다. 그가 도피성 해외유학을 간지 8년만이었다.

그즈음...
줄리아나의 메인 웨이터들이 시두스로 빠져나갔고 얼라이브는 불이 났으며 토마토는 문을 닫고 돈텔마마가 중년의 성지로 떠오르던 그 즈음.

그룹과외는 돈이 됐다. 4명에 25, 5명에 20으로 한 달을 굴리면 어떻게든 100만원이 들어왔다. 1월부터 과외를 하면 3월까지는 놀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아이들에게 대한민국 나이트사를 장황하게 읊었다. 3월부터는 선배들이 4년 전부터 모아놓은 중간고사 기출문제를 워드로 정리해 풀게 했다. 40등을 맴돌던 아이들은 20등 이내로 들어왔다. 모의고사는 당연히 오르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들에게 모의고사야말로 6개월 이상 투자해야 성적이 나오는 것이라고 항상 열변을 토했다. 내 혀끝에 진학을 원하는 아이들이 사회로 내몰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4명은 언제나 월말이면 모여 알함브라, 시두스, 줄리아나, 인터페이스, 얼라이브 중 한 곳을 갔다.

20만원씩 모으면 100만원이 됐다. 룸을 잡고 양주를 두병 시키면 50만원, 엘루이 스위트는 웨이터 태석이형에게 부탁해서 10만원에 잡을 수 있었다.

우리의 가방에는 750ml 6년산 양주가 하나씩 들어있었고 폭탄들을 위한 캡틴큐도 항상 한병씩 있었다.

우리의 정착지가 줄리아나가 된 건 다름아닌 수건 때문이었다.
각자가 수건이 있어야 다음 사람이 안심하고 호텔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스킬은 높아져 갔고 죽순이 언니들은 익숙해져 갔다.

옥흘라호마 주립대 다닌다는 혀꼬부라진 그녀가 세방실업 경리팀 대리라는 것도
NYU anthropology 석사과정이라던 그 아이가 사실 마포구 염리동 사는 애 둘 낳은 엄마라는 것도 알았을 즈음...

이름마저 혹세무민할 에르메네질도 제냐 양복의 경호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다.
화장실 방향제 같은 냄새가 났다.
그는 역시 에르메스라고 했다.

자신의 여자 친구라고 하며 라틴계 여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셋방실업 경리팀 대리보다, 마포구 염리동 누나보다 섹시했다.
글로벌적으로다가 놀아나는 그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그를 기꺼이 우리의 성지로 데리고 갔다.

부킹보다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떻게 사귀었는지 궁금했다.
한강에 노젓는 기분인지도 궁금했다.

무엇보다
암내는 안 나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경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단 40불로 6천불을 딴 이야기부터 그곳에서 만난 창녀와의 총격전과 삼합회의 간부 한 명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영화같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켄터키주”의 그랜드캐니언에서 낙족사 할 수 밖에 없었던 아찔한 순간을 이야기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두 손에 땀이 났다.

우리는 특히 ‘그뤵ㄲ께이어언’이라는 발음에 놀랐다.
조선인의 구강구조상 나올 수 없는 발음이었다.
내가 아무리 프린스턴 의대에서 닥터 하우스에게 포경수술을 받고 스타벅스 종이컵으로 잠지를 가린다고 해도 낼 수 없는 발음이었다.

우리는 이녀석 정도라면 얼마전까지 괌에서 살다가 왔다는, 그래서 번번히 부킹을 와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유진(가명)이와도 대화할 수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경호야, 형들이 가장 아끼는 킹카를 하나 소개해줄게”
“누군데?”
“어, 있어. 얼마전 부킹했는 데 최고였어. 너라면 그 앨 꼬실 수 있을거야.”
“나에게는 엠마가...”
“캐생키ㅡ, 형들의 소원이야...”




괌의 그녀가 들어왔다.
경호는 가볍게 ‘하이’라고 인사했다.





그게 그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경호는 계산도 하지 않았다.
볼쇼이 아이스발레단 단원과 염문을 뿌리며 소호 거리에서 1992년 빈티지 프랑스 와인을 깠다던 경호가 말이다.

택시비를 빌렸다.

“딸라 뿐이라서....”

친구중 하나가 “에라이 사기꾼 개새끼”라며 뒷통수를 쳤다.
“씨발”
 경호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구수한 우리말이 나왔다. 혀끝에서 된장 냄새가 났다.

며칠 뒤, 라틴계 그녀는 ‘엠마누엘 크뤼키’ 사진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그랜드캐니언은 애리조나 주에 있었다.
친구 중 하나는 이태원에서 에메네질도 제냐 짝퉁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아마, 향수는 내가 맡았던 방향제 그게 정답이었을 것이다.

훗날, 세월이 지나 경호 동생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언주로 구불리(현재 천진각)에서였다.

유학 뒤 2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3년간 놀다 군대 끌려갔으며 제대 후 아직까지 논다고 했다.

이상한 건 그에게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동생인 자신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경호 동생과 동석한 여자가 듣지 못할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네 형은 그랜드캐니언이 켄터키주에 있다고 말해도 다들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신은 공평하지 않지만 각기 하나의 달란트를 줬지.”
동생은 나의 이 말을 왜 굳이 소곤거리며 말하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170이 못되는 단신에 강호동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경호 동생 앞에는 소녀시대 티파니 같이 생긴 여자가 앉아 있었다.

Posted by ti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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