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21 13:47
민방위 모자를 눌러 쓴 아버지는 좀 열정적이었다.
적기의 야간폭격에 대비한 민방위 훈련이었다. 빛은 절대 새어나가선 안됐다. 적기는 그 불빛을 타겟삼아 폭탄을 투하할 것이고 아버지는 안방 커튼이 제대로 안쳐져 있다고 문밖에서 안달이셨다. 이듬해 봄은 어수선했다. 광주에선 빨갱이들이 도시를 뒤숭숭하게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재운 후에야 마루에서 혹은 안방에서 두런두런 거렸다. 마루에서 작은방으로 새어나오는 불빛 때문에 새벽녘 요의를 참느라 난 두 번이나 8살을 먹고도 오줌싸개라는 오명을 얻을 뻔 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두런두런한 밤에는 내가 잠을 깨서는 안될 지령을 받은 듯 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허겁지겁 당선되었지만 누구도 쉬쉬할 뿐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택시 기사는 친정으로 가는 우리 어머니께 “박정희가 그나마 우릴 먹고살게 해줬는데 같은 육사인 전두환이도 그만큼은 하지 않겠냐”며 어찌되었든 먹고 사는게 제일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네가 네 죄를 알렸다!”풍의 반공포스터 그리기를 웅변대회와 함께 했으며 어느누구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빼놓고 웅변연설문을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북한어린이들 보여주는 기도 안차는 과장된 몸짓의 무용이나 노래는 우리의 반공웅변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훗날 군대 호국장병 웅변대회에 같이 참가했던 4개월 고참 김다두 일병은 전라도지역 웅변대회에서 연설도중 단상을 앞발 내려찍기로 찍어가며 웅변을 한 덕분에 3등을 했다고 자랑했다. 호국장병 웅변대회에서 난 2위를 해 3박4일 휴가를 얻었다. 복귀하던 저녁 나는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범이 된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탈영을 생각하기도 했다.
먹고 사는 건 우주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먹고 살라고만 하다보니 우린 너무 많은걸 유린한 뒤였고 먹고 사는 게 진짜 먹고 사는 게 아니란 걸 우린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가브리엘 살바토레가 그려낸 조그마한 농촌마을의 섬뜩한 어른들의 이야기는 지금은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정의를 죽이고, 순수를 죽이고, 올바름을 죽이고, 영혼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미카엘처럼 먹고 살기위해 발버둥 쳤다던 아버지의 총탄에 쓰러질지도 모르며 우리가 염원하는 먹고 살겠다는 건 재너머 밥짓는 냄새 쯤 처럼 아련하기만 할지도 모른다.
'영화의 딴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편한 과잉의 추억, 주홍글씨 (0) | 2004/11/01 |
|---|---|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3) | 2004/11/01 |
| 너무나 분명한 치환의 고통 I'm Not Scared(Io Non Ho Paura 2003) (0) | 2004/10/21 |
| 뉴폴리스스토리를 보다 김형곤이 생각났다 (0) | 2004/10/19 |
| 미디어게이트 MG-100 사다. (6) | 2004/09/24 |
| 닝닝하고 상큼한 터미널 (2) | 2004/08/19 |
TAG I'm Not Scared

